이덕주 교수 만나기_그의 사상의 핵심


오랫 동안 Han-Arum & Galilee School of Theology 프로그램에서 “새로운 패러다임”의

<신약-신학>을 가르쳐 온 이 덕주의 교수, 그의 사상의 핵심을 “영상”으로 만납니다.

갈릴리신학교는 이덕주 교수가 그리고 있는 초기 기독교 이해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<말되는 sensible 신학>으로

오늘도 급속하게 파산당하고 있는

“기독교호”를 구출하기 위한 간절한 몸부림으로 시작된

예수 운동입니다.

오늘 듣게 되는 강의 요지 [2009년, 봄 GST, 신약신학 강좌, 2강], 다음은 그 핵심

*<나는 루돌프 불트만 학파의 3대다!” 1대가 Helmut Koester(하바드), 2대가 Gregory J. Reley(하바드 출신, 클레어몬트 교수), 이덕주는 그의 제자.

Come to Jesus [주님께 오셔요]


전도하다 보면, “가면 뭘 줘요? 한다. 대답이 궁할 때가 많다.

기독교가 마치,

예수라는 이름의 신께 무한-허망한 기대로 다가서는 욕망의 전차들의 기지처럼 느껴질 때,

복음서의 예수가 사람들에게 준 걸 간단히 압축-노래로 만들 순 없을까 고민하면서 … 탄생한 작은 토막.

천현순 선생이 곡을 붙였습니다. 다듬고 ,다듬어 너무 힘들지도 너무 매끄럽지도 않게 … 수고 많았어요.

예수 믿은 사람이면 누구든 불러도 좋을 제목으로 제목 수정

그러나 여기서 주님이 Jesus라는 걸 잊을 이들이 있을 것같아 영어 제목을 붙였습니다. Come to Jesus!

살아낼 수 있는 부활 신앙


시체 이야기? 사후생명 이야기, 기적 이야기?

그러니 <밖에 있는 이들>이 혹은 우리 자녀들이 우리를 이성을 지닌 사람 취급을 할 수가 없지 않은가?

https://vimeo.com/63065732

“하느님께서 살리셨다” LA 한아름교회 from Han Arum on Vimeo.

20년도 넘은, 나의 연구 결과이다.

질문=공식.

성경이 쓸데 없는 호기심, 세도가들의 탐심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가? 그렇다면, 기독교 경전은 하찮은 거,

그게 아니라면, 본래의 부활 이야기(본래는 자라투스트라의 어법)는 무엇일까? 지금 여기서 살아낼 수 있는 건 뭔가?

<개벽이 부활이다> 아주 먼 옛날 논문 참조 

 

온라인 신학교육, 희망 있더라


놀라운 보고가 있네요. 미국에서, 목회자가 잡지 하나만 구독할 경우, Christian Century를 서슴치 않고 권합니다.

그 잡지 3.20일자에 <온라인 신학교육, 탁월한 배움의 기회>라는 편지, 그리고 장로교단 지도자들, <신학교육의 심각성. 인식부족>이라는 편지도 들어 있습니다.

지금은 안개 속에 희미하게 보이지만, 쫌 있어, 안개 걷히면,

갈릴리의 소명이 온천하게 드러나게 될 겁니다. 아멘.

2013년, 봄, 부활절을 맞아,


갈릴리신학대학원 Interactive Distance Learning [원격학습] 과정의 모든 과목들을

처음 2~3과목을, 강의-요목과 함께, 개방합니다.

자유롭게 청강하시고, 계속 공부-학점 이수를 희망하는 이들은

다음 요령을 따르면 됩니다.

1. 정식으로 등록한 학생들은,

2. 해당 교무처 혹은 [email protected]으로, <온라인 과목 수강-신청> 양식을 제출, 승인을 받으면,

<온라인 상의 강좌>보다는 훨씬 고화질의 동영상 강좌 파일을 교부받게 됩니다.

3. 교부받은 동영상 강좌는, 4개월 시한, 듣고-공부-과제물을 [email protected]로 제출, 학점을 취득하게 됩니다

새날, 새방식으로 신학하기, 가능성 모색


crowdsourcing 다중합작(多衆合作)? – 2004년경부터 누군가가 사용하기 시작한 새 단어.

“크라우드소싱”이란 ‘대중’(crowd)과 ‘외부자원활용’(outsourcing)의 합성어로, 기업이 제품이나 서비스 개발과정에서 외부 전문가나 일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참여자 기여로 혁신을 달성하면 수익을 참여자와 공유하는 방법을 말한다[네이버]. 그러나 저는 다중합작으로 이해하고, 사용하렵니다.

이게 가능하다면, 지금까지의 [신학하기] 방식을, 완전 뒤집을 수는 없겠지만, 대폭 수정할 수 있을 것같네요.

그러나 <교실 신학하기>의 종말은 가능하지요. GST의 꿈인데 …

교수-학생의 구분이 극소화되지요.

1. 출발점도 … 수강자(목회자)들이 공통으로 정하고,

2. 해답도 수강자들과 교수(과거-전통 연구 전문가 자격으로)가 공동으로 제시,

3. 함께 실험, 실습 후, 재정리하여, 잠정적 합의를 가지고, 그 과목을 필한다.

4. 그러나 실험, 실습은 계속되며,

5. 교회에서는 설교도 목사 독무대가가 아니라, 실수용자(교인들)이 출발점, 중심, 최종이 되고, 목사(전통 해석 전문가)는 조연(찬조 출연자)이 된다.

큰 바위 얼굴, 마침 당도하고 있는 것같은데요 ….

돈 큐핏 읽기를 마치고


20세기 신약학의 거장, 쉬바이처와 불트만, 그들의 약점을 알고, 극복하는 자라야 기독교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. 하는 그의 판단, 대환영입니다.

즉 예수에 대한 바른 이해 없이는 기독교의 미래는 없다는 거지요.

20세기 후반에 종교가, 특히 현재 이슬람이 “극성으로 귀환”한 지구촌 풍경, 그것은 도처에서 불고 있는 “지구촌화” GLOBALIZATION에 대한 “지역 & 노인들”의 반동일 뿐, 진정한 <종교의 귀향>으로는 보지 않고 있는데, 역시 주목할 점입니다.

저 밖/위의 신은 없다. 내세도 없다. 우리는 죽는다. 마침표. 이 인생무상을 성숙한 인간의 출발점으로 설정하고,

“태양처럼” 자신을 산화시키는 삶이야말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진정한 구원의 길이라고 보고 있지요.

한국에서, 돈 큐핏을 깊이 연구하고, 그의 한계를 능가하여, 우리 시대에 필요한 진정한 기독교 대안을 마련할 목회자-학자를 간절히 간절히 기다려 봅니다.

GST 그 차별성


동기생 중, 예일대학 신학석사 출신이 전해 주는 “전설”이 있었다.

“예수 믿고, 천당!” 하면.

C 학점: “아멘!”

B학점: “어떻게 하면 되지요?

A학점: “왜” 예수 믿어야 하지요? 천당 “왜” 가야 하지요”

즉 교실에선, “질문할 줄 아는 학생”이 우등생, 따라서 “왜”를 물을 줄 모르는 자는 예일에서 받지 않는다고 ,,,

GST도 그런 A학점 학생들을 받는다. 그리고 더 나아가 “지성인의 상식”을 가르친다. 익히게 한다. 곧

In.On.For. 교육이다.

In: In what sense? 그게 뭔 말이요? 그 단의의 뜻이 뭔가요? 분명해 해 주셔요?

On: On what ground? 근거가 뭔가요? 그 증거가 일관성 있나요? 성경 밖에는 없나요?

For: For What? For Whom” 그렇게 되면 누가 어떤 득을 보나요? 나는 무슨 이득 있나요?

스스로 생각하는 성인(어른)이 된다.